"25년간 한순간도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순수음악의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은 1989년 창단한 국내 유일의 민간 직업 합창단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국립합창단이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합창단과 달리 오직 회원들의 후원과 자체 공연수익, 각종 프로젝트기금으로만 꾸려간다. 그 때문에 재정적 여유는커녕 운영비 걱정을 떨칠 날이 없다. 단원들의 월급도 다른 합창단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의 실력만큼은 자타 공인 국내 정상급이다. 2002년 일본 문화청이 개최한 공연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2005년 제37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에선 단체로는 최초로 음악 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공연 횟수도 1,000회가 넘는다. 열악한 환경에도 합창단을 이끌며 남다른 성과를 이뤄낸 이는 바로 지휘를 맡고 있는 박치용(50) 단장이다.

21일 만난 박 단장은 지난 시간을 "영혼을 감동시킬 지고지순한 음악을 하기 위해 현실적인 불편을 감수해온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26세가 되던 1989년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모델의 합창단'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뜻을 함께하는 선후배 20여명과 함께 단체를 만들었다. 음악이 상업화되는 모습에 대한 이른바'저항의 몸짓'인 셈이다. 그는 "예술이 갈수록 자극적 인위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며 신심을 키워온 그는 서양음악의 뿌리인 교회음악을 합창단의 기본으로 삼았다. 합창단의 명칭이 13세기 초 서양에서 생겨난 종교적 합창곡을 의미하는 '모테트(Motet)'인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총 34명으로 구성된 단원들의 연령대는 20대 초반 대학생부터 55세 중년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같은 철학을 공유한 만큼 다른 어느 합창단보다 일체감이 높다고 박 단장은 자부한다. "우린 시류에 따른 엔터테인먼트적 음악 보다는 바흐, 헨델 등 고전음악의 정수를 추구합니다. 단원 수가 적어 노동강도가 세지만, 단순히 예쁜 소리를 넘어 온몸을 이용해 진짜 음을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이 힘든 현실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죠."

하지만 창단 10주년이자 IMF 여파가 가시지 않은 1999년은 정말 힘든 시기였다. 후원자들이 급격히 떨어져 나간 데다, 손 벌린 곳이 많아 운영비를 융통할 곳을 더 이상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 단장은 "단원들이 먼저 '형편 되는 만큼만 받겠다'고 해, 실제 절반도 안 되는 월급을 주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때마다 후원자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도움을 줘 위기를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합창단은 올 들어 큰 도약을 시도했다. 단체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활동의 보폭을 넓히기 위해 재단법인 '서울모테트음악재단' 을 설립한 것이다. 박 단장은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일반인 대상 음악학교 설립과 청소년 대상 교육 프로그램 개설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창단 25주년 기념 음악회를 올 연말까지 총 네 차례 연다. 박 단장은 "아마추어나 프로젝트 성격이 아닌 민간 합창단으로서 지금까지 온 것만으로도 우리는 '프로'"라며 "앞으로도 음악이 가진 문화 정서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