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보세요. ‘절망과 분노, 공포 그 뒤를 따르네.’ 어둡죠? 강약을 주면서 성깔 내듯 표현해봅시다.” 31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천지창조’ 공연을 앞둔 연습실은 여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천지창조’를 부르는 무대가 처음도 아니건만.

200년 전 하이든이 세상을 떠난 31일,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에 있는 국제하이든협회 주관으로 세계 20여 개국에서 ‘천지창조’를 동시에 부르는 ‘월드 크리에이션’ 프로젝트가 열린다. 서울 바로크 합주단과 모테트 합창단이 한국 대표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한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독일 미국 등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참여한다. 한국은 참가국 가운데 공연이 가장 빨라 이 프로젝트의 문을 열게 됐다.

서울 모테트 합창단의 테너 이광석 씨(37)는 “시간대는 다르지만 세계가 하이든을 기리기 위해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무대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면서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하게 참가해 더욱 뜻 깊다”고 말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지휘자 이 씨는 2년 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하이든 페스티벌’에서 하이든 협회의 발터 라이허 사무총장에게서 한국 프로젝트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지휘자 이 씨는 “이번 무대의 ‘천지창조’는 하이든 당대 연주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목표”라며 “연주와 합창 모두 투명한 음색, 색깔이 선명한 화음을 선보이려 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참가단체는 물론 바로크와 고전주의 음악에 대한 해석으로 명성이 높은 그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무대다. 연습실은 2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음을 또렷이 내고 지금보다 더 깨끗하게 끊으세요.” 연주에 귀를 기울이던 이 씨가 큰 소리로 단원들을 재촉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각국에서 정상급 단체가 참여했다. 독일에서는 유럽 최고(最古) 명문악단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지휘 로빈 티차티),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하이든 필하모니(지휘 아담 피셰르), 미국 보스턴에선 헨델&하이든 소사이어티 오케스트라(지휘 그랜트 루엘린)가 연주한다. 원전연주 단체인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지휘 브루노 바일)가 연주하는 캐나다 토론토 공연에는 한국인 바리톤 정록기 씨가 출연한다. 3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2만∼10만 원. 02-579-7294, 5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천지창조’ 3대 오라토리오 꼽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린다. 100곡이 넘는 교향곡, 70곡에 이르는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면서 고전파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었다. 특히 제1악장에서 소나타 형식을 완성한 작곡가다. 만년에 미사곡과 ‘천지창조’(1798), ‘사계’(1801) 등 걸작을 남겼다.

‘천지창조’는 헨델의 ‘메시아’, 멘델스존의 ‘엘리아’와 함께 3대 오라토리오로 꼽힌다. ‘천지창조’는 성서를 기초로 하고 존 밀턴의 서사시 ‘실락원’을 독일어로 번역해 가사로 붙였다. 하이든은 생전에 “이 곡이 전 세계에 다 들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공연도 ‘천지창조’였다. 총 3부 32곡으로 전체 연주 시간만 1시간 40분∼2시간이 걸린다.